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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by 마르코 권 2024. 3. 3.

 
유대인들의 역사 가운데 주의 팔이 강력하게 나타난 사람들이 다수 있다. 그중에 첫번째로 생각나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삼손일 것이다. 그는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사람 천명을 헤치운 사람이었다. 참으로 과장과 뻥이 심한 이야기라고 들릴런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나라의 건국신화에도 이 정도 규모의 이야기는 적잖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여러분과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주의 팔이 나타난 또다른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소개하고자 이렇게 운을 띠운것이다.  
 
그 사람이야기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나온다. 이사야 53장을 봐야 한다. 이사야는 구약성경의 예언자로서 태어난 시기는 기원전 약 752년 경이며 B.C 681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본다. 그가 이스라엘이 바빌론 침략으로 멸망당하기까지 요담, 아하스, 히스키야 같은 세 왕들을 겪었으며 민족의 스승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쉬지 않았다.
 

2천년 이상 예지몽을 가진 예언자 이사야

예언자 이사야가 본문의 주제는 아니지만 그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의 예지몽은 보통 예언자 혹은 예언가들의 식견을 우습게 볼 정도다. 그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인류 미래까지 예지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위대한 것이 라기보다는 그러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신 분의 섭리가 더 놀랍고 위대한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여기 짧게 맛보기만 보여드리고 본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주의 팔이 나타난 분께서 민족들 가운데서 심판하며, 많은 백성들을 꾸짖으리니 그들이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농사짓는 기구)을 만들고, 자기들의 창을 쳐서, 가지치는 낫을 만들리라. 민족이 민족을 치려고 칼을 들지 아니하고 그들이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장 4절)
 
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이사야 11장 6절)
 
인류가 찾는 이상향! 이 정도면 끝판왕이 아닌가!  인류가 아직도 달이나 화성에 이주하여 살 궁리를 하고 있다면, 뭔가 한 참 잘못짚은 것이다. 
 

주의 팔이 나타난 사람

 
주의 팔이 나타난 사람을 먼저 소개함에 앞서 여러분의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곤란하므로 먼저 그 사람의 캐릭터부터 소개할까 한다. 그는 이사야 사후에 300년 하고도 수십년 후에 태어날 예정이었던 고로 그의 용모를 알지 못했지만 나름 이 정도나마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 그는 연한 싹, 연한 순으로 묘사되었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란다고 했다. 비록 물기도 없는 척박하고 마른 땅이었지만 그의 뿌리는 소멸되지 않고 자랐다고 했다. 
  • 그는 훈남이 아니었던게 분명하다. 모양도 우아함도 없다고 했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비호감 형이었을 듯하다. 이사야 조차도 그를 흠모할 아름다움이란 없었다고 예언했다. 

주의 팔이 나타난 사람의 용모는 그렇다 치자, 그의 행적은 과연 얼마나 위대하게 서술되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거부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그는 슬픔이 많고 질병과 고통에도 익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 사람들은 그를 존중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얼굴을 돌려 외면했다고 한다.
  • 그가 질병과 고통을 당하거나 슬프하고 있을 때, 그를 본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 괴로워하고 고난당하는 중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다

 
인류의 이상향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 아닌가!  2천년하고 24년이 지난 현재,  주의 팔이 나타나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사람의 모습은 ' 턱 뼈를 휘두르며 괴력을 자랑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위와같이 비호감형인 사람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사야의 글을 잠시 더 읽어보자.
 

  • 그가 하나님께 맞고 고난당한 것은 우리들의 질병과 고통 그리고 우리의 슬픔 때문이었다.
  • 그가 채찍으로 맞고 상처를 입고 멍들고 상하게 된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으며 그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의 화평과 치유를 위한 것이었다.
  • 그는 부당하게 억압과 고난을 당했지만 도살장으로 끌려가거나 양털깍는 자 앞에서 양들이 말이 없듯이 그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옮겨놓았다고 했다.
  • 그는 비폭력으로 일관했으며 결코 비굴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2강도들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속죄의 제물이 되다

 
미래에 주의 팔이 함께 할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이 세상이 기다리는 초인(초인류)이 되어 거대한 물리력으로 이 세상의 악당들과 전쟁을 종식시키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전쟁과 인류의 고통은 그렇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획을 잠시 들여다 보자.
 

  • 그가 감옥과 재판에 끌려나가 사형선고를 받고 자신의 생명이 끊어지게 되어 더이상 그의 후손을 볼 수 없게되는 것조차 이 모든 것은 '내(하나님) 백성의 허물을 그의 형벌을 통해 속죄'하고자 함이다.
  • 그를 상처나게 하는 것이, 그를 고난 속에 두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다고 했다. 왜인가? 기독교의 오소독스(Orthodox)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는 자신의 씨(믿음으로 구원얻게 될 인류)를 보게되고, 자신의 날들(구원받은 인류들과 함께 할 날들)이 늘어나며, 하나님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할 것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 그가 자기 혼의 고통이후 죽음을 맞이하나, 끝내 만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지식(구원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뿐아니라 그들의 죄악을 담당(용서)할 것임을 아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다. 수백년 뒤 그의 뒤에 나타날 사람, 주의 팔이 함께 할 사람, 그가 자신의 혼을 죽음에 내어줄 뿐아니라 범죄자들처럼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며 범죄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Intercession)하게 될  사람이라고...
 

결론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는가? 인류에게 영생이라는 약을 팔고 있는  게놈 프로젝트인가?  인류가 꿈꾸는 이상향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인류가 쌓아 둔 금,은보석과 바이오기술과 AI기술, 신재생에너지 그 무엇이라해도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성경은 말한다.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한복음10장 9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해 양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가는 자, 바로 그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같은장 1절)
 
모쪼록  '주의 팔이 나타나신 분'이 여러분 모두의 구주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