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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성서를 읽을 때 주의할 점

by 마르코 권 2023. 11. 2.

우리가 매일 성서를 읽는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을 얻기 위함인가? 성서를 읽고 나의 부족한 기독교적 소양을 고무시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특별한 신의 계시를 얻어 이 세상에서 맞닿드리는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함인가? 저마다 여러분은 자신 만의 목적과 계획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성서와 알고 지낸지는 희년(50년)이라는 수만큼 오래되었다. 
 
어릴적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자 다같이 성경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필요에 의해 읽었다기 보다 반의무적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성서는 더이상 가족이 함께 읽지는 않았다. 그저 주일날 예배당에 가서야 접하는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 성서는 나의 관심사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성서에 대한 나의 이런 태도가 불러온 결과는 부끄럽지만 다음 몇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 십계명을 꼭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서가 제시하는 도덕 기준의 틀로부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듯이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선 극도의 엄격함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도덕적인 안전망은 꼭 필요한 것이다. 부모가 되고 자식을 길러본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인간은 그 무엇도 그것이 종교일지라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최고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사람은 방종과 타락으로 인생을 마감하기 쉬울 것이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이 지구에 생겨난 다수의 종교와 성인들의 출현은 인간 혼자 만으로는 병든 사회와 국가를 구제할 수 없을 뿐더러 나아가 사회 구성원인 자신 또한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 성서에 대한 겉 스토리만 머리속에 담고 있는 지식만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묻고 답하며 풍성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영향력도 줄 수 없다. 왜냐면 자기 스스로 읽지 않은 성경 탓에 본래 성서가 담고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그 심오함은 다른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나오거나 책을 통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눈은 뜨고 귀는 열려 있지만 평생 스스로 성서를 읽고 살아가는 기회를 목사나 교수 등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타인에게 맡기는 꼴이 되고 만다. 과거 중세 암흑시대 역시 평민은 성경을 소지하거나 읽지도 못하게 했다. 성경해석은 사제나 주교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결과 중세사회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오기 전까지 인간의 자유와 사상이 극도로 폐쇠되고 억압받아 온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은 그것이 아니다. 시골 농부나 나무꾼, 양을 치는 목동, 시장의 아낙네, 대장장이, 군인, 성문지기, 마부 등 빈부귀천을 묻지 않고 신분상하도 따지지 않았다. 누구든지 예수의 가르침을 읽고 듣고 따를 때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서를 읽고, 해석은 자신의 뇌피셜로 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성서는 하나님의 일을 기록해둔 보고이다. 하나님의 일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알 수 없다(고린도전서 2장11절). 해서 우리 각자의 심중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않으면 애초부터 그 해석은 불가하다. 때문에 일찌감치 그런 일은 그만두라고 성서는 권고하고 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복음 16장 13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일서 2장 27절) 는 말씀처럼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믿는 자들의 성경교사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나 성경교사 모두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중에도 훌륭한 성경교사들이 많지만 우리의 영을 1:1로 만지시고 성장시켜 주시는 분은 오직 주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이요, 그들은 그 말씀을 사용함으로 감각들을 단련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이다(히브리서 5장 14절).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필자와 독자 여러분은 성서와 멀어질 수 없는 것이다. 멀어지면 그 순간부터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보시면 된다.
 

성서를 읽는 목적은 꼭 해석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그것을 섭취하지 않으면 나의 건강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듯 성서도 마찬가지다. 성서를 읽는 목적은 올바른 해석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성서의 가름침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이다. 기독교의 중심은 성서도 교회도 신학도 기독교의 전통도 아니다.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빠진 성서, 교회, 신학, 전통 모두 무의미하다. 오직 그리스도다. 내가 성서를 읽고 배우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께로 향하는 길이요 문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읽는 목적은 이 지상에 난무하는 사이비, 이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필자는 불행중 다행으로 25년 전부터, 성서로 다시 돌아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읽고 매일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삶의 동기와 목적이 그 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나 할까? 성서의 기록자와 해석가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사이비와 이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성서가 성서를 해석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해법이라고 믿는다. 이단 사이비 역시 성서를 제 입맛에 맞추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으므로 성서 속에 기독교를 떠받치고 있는 독트린이라 불리는 절대적 교리만큼은 꼭 파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1)하나님이 육체를 통하여 이 땅에 나타나셨다는 사실 2)이신칭의 3)죽은자의 부활 4)하나님의 심판 5)영원한 세계 등
 
 
아뭏든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이단 사이비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