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스라엘과 전쟁중인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지역은 고대 필리스티아라고 불리며 3500년 이상 오랜 역사를 가진 유명한 고대지역이다. 땅 이름은 팔레스타인이었지만 그 땅의 주인은 여러번 바뀌고 또 바뀌었다. 그러나 '사는 곳이 운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도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원한 팔레스타인의 후예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오늘은 독자여러분과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나오는 비운의 왕과 그의 세아들의 죽음과 이 땅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구약성경 블레셋이라 불린 민족과 현재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살고있는 팔레스틴 주민들 사이에는 혈통적인 연관성이 없음을 다음 유투브 동영상으로 보충설명코자 한다.
https://youtu.be/HD2RqsY9ufM?si=6_KCiO6-mSv-ZRz8
이스라엘 왕조실조
조선왕족 실록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그들만의 왕조실록이 있다. 그것은 열왕기상·하권, 역대기 상·하권 그리고 초기 사료로서 사무엘 상·하권 등이 있다. 그중 오늘 인용할 본문은 역대기 상권 10장이며 본문은 한글킹제임스와 흠정역을 두루 참조하였다. 지금의 팔레스틴 땅에서 최후를 맞이한 유대인 왕과 그의 세 아들 이야기의 줄거리를 잠시 옮겨본다(의역참조).
그때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필리스티아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 당하여 쓰러졌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유대인의 왕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맹렬히 뒤쫓았고 그들이 사울의 아들들인 요나단과 아비나납과 말키수아를 죽였다. 전쟁이 상호간 격렬해지자 팔레스타인의 활쏘는 자들이 사울을 맞추었다. 그가 활쏘는 자들로 인하여 부상을 입었다. 그때 사울은 그의 병기 든 자에게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할까 함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병사는 두려워하며 그를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울이 칼을 취하여 스스로 그 위에 엎드러졌다. 사울의 병기를 맡은 병사도 사울이 죽은 것을 보고, 똑같이 칼위에 엎드러져 죽었다. 그리하여 사울이 죽고 그의 세 아들과 그의 온 집이 함께 죽었다.(중략)
이튿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임당한 자들을 벗기려왔다가 유대인 왕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것을 발견하고 그를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취하여 그들의 우상들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팔레스틴 땅 사방으로 보냈다. 또한 그들이 그의 갑옷은 그들의 신당에 두고 그의 머리는 다곤 신전에 못박아두었다.
이때 지금의 요르단 동쪽 므낫세 지파의 일부 도시였던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이 팔레스틴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것을 듣고 그들중 용사들이 일어나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들의 뼈를 야베스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칠일간 금식하였다(같은장1-12절)고 기록되어있다.
사울왕은 본래 베냐민의 후손이었다. 한때 이스라엘 11부족이 어떤 일로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동족상잔을 일으킨 적이 있었을 때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 만큼은 참여하지 않았다. 후에 야베스 길르앗이 암몬 족속에 의해 포위당했을 때 사울왕은 그들을 구출해준 적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목숨을 걸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주검을 가져다가 장사지내 주었던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죽음이 주는 교훈(결론)
사울 왕도 나름 이스라엘 국가를 위해 총칼을 들고 팔레스타인과 맞대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정의로운 명분이었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자신뿐아니라 그의 아들들까지 맹렬히 전쟁에 참전하여 모두 순국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비록 국왕이 전사하여 국가는 붕괴되고 말았지만 나라를 위해 위국충정을 바친 것만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울왕의 죽음에 대하여 유대인들의 왕조실록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하여 사울이 죽었다. 이는 그가 주께 범한 죄 때문이었다.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않고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여 그것을 물었다. 주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도 그를 죽이시고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돌이키셨다.(같은장 13,14절)
참, 보통 일반인의 생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아니 유대인들의 시작과 끝은 오직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선택에 좌우된다. 전쟁의 원인이나 승패, 왕의 죽음과 국가의 사활도 모두 하나님께 소속된 문제이다. 신과 인간, 하나님과 최고 지도자 국왕의 관계... 하나부터 열까지 신탁에 근거한 삶이다. 구약성경 타나크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춰졌다. 사울왕과 그의 집이 전쟁에 패하여 몰락하게 된 원인은 바로 '주께 묻지 않은 죄'와 '말씀을 거역한 죄'였다. 오늘날 만약 이 기준만을 가지고 150개가 넘는 이 세상 나라 지도자들을 성경의 잣대위대 올려놓아 본다면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할뿐아니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이 당장 실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집행유예의 기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사울왕은 모든 것이 부족함 없는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힘의 반석이요 요새와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 엄청난 파국을 맞게 되었다. 반대로 동시대를 살았던 다윗은 사울왕과는 반대였다. 그가 그의 하나님께 내어보인 태도는 바로 시편 62편에 잘 나와있다. 바로 이 한 긋의 차이가 한 사람은 죽음으로 끝을, 다른 한 사람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게해주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과연 어떤 이의 행보를 따를 것인가?
진실로 내 혼이 하나님을 기다리니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오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라(중략). 내 혼아, 너는 하나님만 기다리라. 나의 기대가 그로부터 오는도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구원이시라. 그분은 나의 요새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나의 영광이 하나님께 있으며 내 힘의 반석과 내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여호아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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