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두려움이 적당하게 있을 때 오히려 유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늘 즐겨사용하는 칼이나 불 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오늘 독자 여러분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일상적인 건전한 두려움 말고 신과 인간의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오늘 이야기 주제의 배경이 되는 성경은 주로 잠언 1장 말씀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우리는 이 말을 어린 시절부터 우리 사회에서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비교적 우리 대한민국 어린이들에 대한 세계 여러 민간 방송사들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정직하고 예의바르다는 것이 한결같은 내용이다. 그러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세대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흐뭇한 일이다. 세상 만사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가 이렇게 세계 어디를 내 놓아도 뭇 사람들에게 칭찬과 예우를 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 모든 평가에 앞서 인간에게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도덕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인류애와 가족애 등등 만물의 영장 인간으로서 가져야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가치를 존중하며 살고자 하는 목적과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유전 또는 생물학적으로 시공간에 제한을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유한의 존재이다. 해서 인간은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햇빛과 공기 신선한 물과 음식 따뜻한 의복과 집 그리고 몸이 아플 때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의료서비스, 이뿐아니다 몸이 늙으면 누군가에게 내 몸을 맡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자신의 삶을 불태워 인류의 불사를 꿈꾸며 오늘까지 불로장생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게놈 화성탐사 양자컴퓨터 AI 기반 테크놀로지... 인간이 보유한 무한의 잠재력과 지식을 좋은 분야에만 개발 성취한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기술과 식량을 비롯 인간의 생명유지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무기삼아 인류를 지배 통제하려는 세력도 늘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성경은 이들에 대하여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들' '우매한 자들' '조롱하는 자들' 어리석은 자들' '하나의 돈주머니(EU 또는 정치·경제연합 등)를 만들고 연합하기를 좋아하는 자들' '무력을 앞세워 남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유전, 광물자원을 수탈, 팔아먹는 자들' '자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는 자들' 이들을 잠언에서 말하기를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찾아내어 그 탈취한 물건으로 자신들의 집들을 채운다'고 말했다. 냉전 종식이후에도 가상의 적을 만들어 '엎드려 기다렸다가 피를 흘리고자 하는 무리들'은 항상 있어왔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 조차 그런 일들이 있어왔음을 이제는 감출수 없다. 세계가 다 알고 있다. 하늘을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처럼 인류를 고통과 비극으로 몰아간다.
누구나 안전하게 거하며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사는 길
참 아이러니하다. '누구나 안전하게 거하며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고픈' 개인이나 사회 나라나 국가는 많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때문일까?
위 글은 잠언 1장 33절 구절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여 인류가 초과학시대 또는 영성시대로 들어가면 모든 인류가 잠에서 깨어나 각성하게 되고 이 땅에 전쟁도 사라지고 인류는 서로 미워하지도 않으며 영생불사하면서 살 수 있다고..... 모두 잠에서 하는 잠꼬대이다. 인류의 미래는 이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왜냐고? 오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보라! 집단서방(Collective West)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그리고 아시아 대륙을 막론하고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 보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든 보통사람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성경이 말하는 '누구나'가 실현불가한 현세상이다. 그 이유를 성경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언제까지 너희 우매한 사람들아, 너희 우매함을 사랑하겠느냐?
언제까지 너희 조롱하는 사람들아, 조롱하기를 즐기며,
언제까지 어리석은 자들아, (나의) 지식을 미워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너희에게 나의 말들을 알게해 주겠다.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가 거절하였다.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도 중시하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너희가 나의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나도 너희가 재앙을 당할 때 비웃을 것이요,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 조롱할 것이다.
이는 너희 두려움이 멸망같이 이르고 너희 재앙이 토네이도 같이 닥치며 고난과 고통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그때 그들이 나를 부를 것이나,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일찍 나를 찾을 것이나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나의)지식을 싫어하며 주(하나님) 두려워하기를 원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인류의 거울
인간은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바로 보려면 거울을 보아야 하듯 인류는 ' 누구나 안전하게 거하며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고픈' 미래가 되게하려면 성경을 보아야 한다. 인류 역사에 주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며 그분의 지식을 싫어하다가 최후를 마친 이스라엘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고 결론을 맺고자 한다. 인용 성경구절은 열왕기하 25장이며 한글킹제임스 본문이다.
아무리 유대인이 하나님의 선민 어쩌구 저쩌구 하여도 하늘 하나님 두려워 함과 그분의 지식을 싫어한 댓가는 가혹하다. 어디 유대민족 뿐이랴 모든 민족의 역사마다 이런 아픔과 비극이 없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그때마다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고 자신들의 계략들로 배부를 것이다. 우매한 자들의 돌이킴은 그들을 죽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번영은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잠언 1장 31,32절) 멀리갈 것 없이 유대민족의 어둠은 AD30년 경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예수에게 십자가 사형언도를 내려 예수께서 십자가 지실 때 구레네 출신 시골사람 시몬이 대신 그것을 지고 갈보리 언덕까지 가고 있었다. 그때 가로변에는 예수를 위해 통곡하고 애도하는 백성들의 큰 무리와 여인들이 그분을 따르고 있었다. 이때 예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며 하신 말씀 또한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할 말씀이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보라, 그 날이 오면 그들이 말하기를 '잉태할 수 없는 자와 아이를 낳아 본 적 없는 태와 빨려 본 적 없는 젖이 복이 있다' 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산에게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하며 또 언덕에게 '우리를 덮으라'고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푸른 나무에게 이렇게 행한 것을 보면 마른 나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 (누가복음 23장 28-31)
어떤가? 푸른나무에서 마른나무에로...는 시간 곧 역사의 경과를 말한다. 즉 후대라는 말이다. . 우리나라에 한국의 역사서이자 예언서로 유명한 책 <격암유록>이 있다면 유대민족에게는 구약 성경과 신약성경이 있다. 둘다 히브리 민족으로부터 태동된 것이다. 구약성경이 혈통적인 유대민족의 정통성을 받쳐주고 있지만 신약성경은 범세계적이라 할만큼 21세기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두려움을 상실한 인간이 향하는 곳(결론)
하나님 두려움을 상실한 인간이 향하는 곳은 죽음과 멸망이라고 말한다. (잠언1:32) 그들의 특징은 그분의 지식(The knowledge of God)을 싫어하는 것과 그분의 조언(council)을 결코 원치 않는 것 마지막으로 그분의 바로잡음(reproof)을 경멸하는 것 이 세가지다. 그들이 먹고 배부르게 될 열매는 자신들의 행위 즉 심은대로 거두게 된다고 말한다(같은장 31절)
현대인의 머리 속에는 주식, 펀드, 부동산, 코인 등 등 부와 권력과 명예를 독점하기 위한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락과 건강(장수)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이 사는 동안 이것들이 필요하리라. 인간이 물질로만 이루어진 존재라면 100% 적중한 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가 있다. 그것은 본래 두려움을 상실한 인간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은 많다. 신의 위대한 아가페 사랑, 평범한 인류가 자신과 같은 인류를 위한 헌신과 봉사 등 지극히 고결하고 고귀한 것일수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누구나 안전하게 거하며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고픈' 미래는 누구에게 약속된 것일까? 하나님 두려움을 상실한 인간에게 낙원은 허락되질 않았다. 오직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미래이다.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시드키야 왕과 유대민족의 디아스포라를 기억할 것이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없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준 집이 어디 있으며, 나의 안식할 곳이 어디 있느냐? 그 모든 것들을 나의 손으로 지었으며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이루었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내가 보살피리니 곧 영이 가난하고 통회하고 내 말에 떠는 사람들이라(이사야66:1,2).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들이 7천명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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