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잘 읽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기독교 신앙의 목적과 목표?

by 마르코 권 2024. 11. 26.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무엇일까? 기독교 신앙도 목표가 있을 수 있는가?

이 물음은 필자가 시편 17편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만약 기독교 신자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 육체의 죽음이후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으므로

. 죽어서 천당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 자신의 모든 죄악이 깨끗이 사라지고 새삶을 살수 있기에

이것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영생에 대한 소망, 지옥같은 이 세상을 떠나 더이상 질병과 고통 죽음이 없는 낙원에 대한 동경, 무거운 죄의식 또는 죄업을 벗고 죄의 고통이 없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 등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기독교 신앙의 목표가 될만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신앙의 목표는 내세지향적이기 보다는 현세지향적인 뉘앙스가 좀더 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말해 무절제하고 타락한 삶을 버리고 정직하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목표를 가지게 만들거나 어두운 세계와 같은 범죄인의 삶을 버리고 밝은 사회인으로 새 삶을 사는 것, 이밖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 더 살기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목표를 갖게하는 일 등 모두가 기독교 신앙의 목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필수적으로 따라 올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시편 17편에서 발견한 기독교 신앙의 목적과 목표는 이렇다.

오 주를 신뢰하는 자들을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그들을 치려고 일어나는 자들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사 주의 놀라운 인자하심을 보여 주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밑에 숨기사
나를 학대하는 사악한 자들과 나를 둘러싸서 죽이고자 하는 내 원수들로부터 내가 벗어나게 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의 기름에 잠겨 있으며 자기들의 입으로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우리가 걷는 곳에서 이제 그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땅을 향해 몸을 숙인 채 눈을 고정하되
자기의 먹이를 탐내는 사자같이, 은밀한 곳에서 숨어 기다리는 젊은 사자같이 그리하였나이다.
오 주여, 일어나사 그를 좌절시키시고 던져 버리소서. 주의 칼이 된 그 사악한 자에게서 내 혼을 건지소서.
오 주여, 또 주의 손이 된 사람들과 이 세상 삶에서 자기 몫을 받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내 혼을 건지소서. 주께서 주의 숨긴 보물로 그들의 배를 채우시니 그들에게는 자녀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자기들의 남은 재산을 자기들의 어린 아기들에게 물려주나이다(시17:7~14).

독자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위 구절들은 이 세상은 의인이 살기에 너무나도 힘든 곳임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불평과 탄식섞인 호소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가 전능자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고 부조리한 세상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원천이 무엇인지? 필자는 아래 구절에서 찿을 수 있었다.

나로 말하건대 나는 의 가운데서 주의 얼굴을 바라보리니 내가 깰 때에 주의 모습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해서 필자는 감히 말하건대 기독교 신앙의 목적과 목표는 기독교를 믿는 개인 개인의 소망과 희망사항에 두기보다는 그 소망과 희망을 가능케해주신 전능자 곧 절대자에게 주목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영생과 천국에 대한 희망을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선 순위로 삼는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천국과 영생에 대한 기독신자의 이기심이 기독교 신앙의 목적과 목표가 되는 순간,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것이다.

주의 얼굴, 주의 모습으로만 만족할 수 있는 기독자의 삶, 그것이 기독교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