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로마 감옥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한 말이었다. 물론 오해하지 말것은 바울이 위 제목처럼 똑같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아래 본문을 잘 읽어보면 과연 그렇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속박 당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아이들과 더불어 속박 중에 있느니라.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갈4:24~26).
바울은 당시 자신이 살았던 팔레스틴 땅이 2024년 현재 포연이 가득한 전장터로 변해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위에 있는 예루살렘? 바울과 요한 사도는 성경 다른 곳에 이곳에 대하여 확실히 기록해두었다.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와...(히12:2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계21:2).
영 안에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에 이르러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저 큰 도시 곧 거룩한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그 도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더라. 그것의 빛은 지극히 귀중한 보석 같고 벽옥 같으며 수정같이 맑더라.
그 도시에는 크고 높은 성벽이 있었고 열두 문이 있었으며 그 문들에 열두 천사가 있었고 그 문들 위에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니라(계21:10~12).
어떤가? 위에있는 예루살렘의 모습과 레바론, 헤즈볼라, 예맨 후티, 이란 등과 총체적 무력충돌 중인 현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모습을 비교해보자면 달라도 넘 다르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별 미련이 없는 듯하다. 이 지상에는 우리가 바라고 소망할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결론, 위에있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인류 모두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신부가되라. 그러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의 거주민이 되기에 충분하다.
마지막 사도 바울의 당부말씀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새예루살렘)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새예루살렘)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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