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을까?
오늘 시작할 이야기는 말 그대로 '어찌하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어디에 놓이게 되냐?에 따라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180도 왜곡되어 전달되어질 수 있다는 안타까운 이유 때문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23.6.13 본인의 글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의 수정 보완판이라고 밝혀둔다. 지난번 글은 (,) 쉼표의 위치에 따라 본문 해석의 차이점을 말했지만 금일은 새로 발견하게된 내용을 가지고 욥기24장 본문 전체를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문제의 구절은 욥기 24장 1절에서부터 시작된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개역개정)
단순하게 생각하며 눈으로 쓰윽 읽고 지나가면 그만인 구절이다. 어려운 단어나 딱히 해석에 걸림돌이 될만한 내용도 없어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드려다 보면 무척 난이도가 있는 문장이다.
독자 여러분께 첫번째 질문드린다.
위 문장에서 '어찌하여(Why)'라는 의문부사가 한정(수식)하는 단어가 (1)전능자 (2)그를 아는 자들 중 어느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답은 당연히 (1)전능자 가 되겠다.
두번째 질문, 후반절에 나오는 '그를 아는 자들'이란 구절에서 '그'는 누구를 가르킨다고 생각하는가? (1)하나님 (2)욥
정답은 (1)하나님 이 되겠다.
마지막 질문,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앞소절에 이어 뒤에 나오는 '그의 날'에서 '그'는 누구를 가르키는 것인가? (1)하나님 (2)하나님을 아는 자들
중학교 국어실력이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다. 마지막 문제의 정답은 (1)하나님 이었으면 좋겠지만 틀렸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등장 인물 찾기 : 성경 읽기의 기본
욥기서 24장 1절을 다른 성경으로 읽어 보겠다.
Considering then that there is no time hyd from the almightie, how happeneth it that they which know him do not regarde his dayes.(Bishop Bible 1568)
만군의 주께서 시간을 숨기지 않으시니, 그분을 알지만 그의 날들(his days)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그리 많은가?
(비숍성경 1568, AI번역기 참조)
먼저 이 구절에 나오는 등장인물부터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문제가 술술 풀리게 되어있다. 등장인물은
(1)전능자(the almighty)
(2) 그들(they) - 그분을 알지만 (그의 날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괄호 ( ) 안에 나오는 그는 '하나님' 아님.
(3)마지막 그의 날들(his days)에 나오는 '그'다
(2) (3)은 따지고 보면 같은 주체이다. 때문에 이 구절의 등장인물은 하나님과 사람이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고 뒤에 나오는 사람(his days)이 어떤 사람이냐?를 밝히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1. 의문부사 '어찌하여'를 먼저 살펴보자... 어찌된 영문인지 '어찌하여'가 비숍성경에서는 '전능자' 곧 '만군의 주'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날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며주고 있다.
2. 위 문장에 굵은 글씨 '그의 날들(his days)'은 '하나님의 날들'이 아니라 '사람의 날들'이다. 어떤 존재의 사람들인가? 그것을 설명하는 장이 욥기 24장 1~25절에 걸쳐 설명되어 있다.
'그의 날들(his days)을 보지 못하는 자'는 어떤 자들인가?
드디어 핵심에 거의 다다랐다.
1611년 King James Bible 본문의 검색창에 <his dayes>라고 검색해보라. 그 어느 구절도 '전능자의 날들' 또는 '만군의 주의 날들' 등으로 나오는 예가 없다. 오직 하나님 또는 전능자와 대척점에 서있는 '인간의 날들'로만 나온다. 따라서 욥기서 24:1절 본문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는 역사와 시간(때)조차 숨겨질 수 없을진데, 그분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자신의 날들(his days)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런지, 보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많다는 말인가!
라고 욥은 탄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 구절들은 24장 전체 본문에서 자신들이 맞이할 최후를 보지 못하는 자들을 염두에 둔 구절들이다.
19절,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을 물을 말려버리는 것처럼 무덤이 죄지은 자들을 소멸시켜버리고,
20절, 다시는 그 악인이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의 사악함 역시 나무처럼 꺽이고 말것이다.
24절 그들은 잠시동안 높아지는 것 같으나 곧 낮아지고 사라질 것이며, 다른 모든 사람 같이 길에서 제거되고 이삭의 끝처럼 잘려버리는, 그 때가 있음을 그들은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왜? 무슨 이유로? 그렇다는 말인지? 알아야겠다. 그 이유는 같은 장 2절~16절, 21절 등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경계표를 옮기고, 양떼들을 강제로 빼앗고, 아비없는 자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수소를 저당잡고, 궁핍한 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벌거벗은 자들이 옷없이 유숙하게 하고, 추위에도 덮을 것이 없고, 비가 와도 피할 곳이 없어 바위속에 살게 하며(Homeless), 가난한 자의 저당물을 취하고, 주린 자들의 곡식을 빼앗고, 노동력을 착취하여 목이 마르도록 고생시키고, 살인과 절도, 간음, 학대... 등등 자신들의 최후를 보지 못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사악함들이 위 구절들에 빽빽히 나온다. 성경은 완고한 표현을 썼을 뿐, 빈부의 양극화를 치닷는 요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시대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결론
지난번 욥기 24:1절과 관련된 본문은 아래와 같이 수정되어야 할 것같다.
만군의 주께서 시간을 숨기지 않으시니, 그분을 알지만 그의 날들(his days)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그리 많은가?
24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특히 24장 말미에 욥이 남긴 일갈을 되새겨볼 때, 위와 같은 번역을 따르는 것이 훨신 더 성경적이 아닐까 결론 내려본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자가 누구며, 내 말을 무가치하게 만들 자가 누구냐?
욥은 악인들이 자신들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며, 그동안 자신이 겪으며 살아온 쓰라린 삶의 경험을 통해 이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죄인이 일백 번 악을 행하고 그의 날들(his days)이 길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곧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잘될 것임을 내가 분명히 아노라. 그러나 악인은 잘되지 못할 것이며, 그의 날들(his days)도 길지 못하여 그림자 같으리니,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음이라(전도서8:12,13). 자신의 최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여기에도 있었다.
욥기 24장의 이해는 여기까지다. 혹, 필자가 보지 못한 점이나 간과한 것이 있다면 추후에 계속 수정 보완할 예정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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