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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유토피아를 불러오는 강력한 기도문

by 마르코 권 2024. 10. 19.

사도행전 4장은 현대인 가운데 식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해진 장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에서부터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사상은 물론 이에 영향받은 서구의 개인이나 단체는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다름아닌 베드로와 요한을 포함한 제자들의 강력한 기도때문이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올려드린 기도가 다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세계 역사를 역동과 혁명의 소용돌이로 내몰아 갔다.

그 이야기의 발단은 사도행전 3장에서 비롯된다.

이제 아홉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갈 때에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 태에서부터 걷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메고 왔는데 이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구제물을 요청하게 하려고 그들이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 하는 성전 문에 두는 자더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보고 구제물을 요청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그를 눈여겨보며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기대하며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거늘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매 곧 그의 발과 발목뼈가 힘을 얻고 그가 껑충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니라(행3:1~8).

이 사건 이후 제자들은 유대인 회당에 끌려가 공갈 협박을 받으며 유대인 사회에서 예수를 더이상 전파하지 못하게 회유당했다.

그들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의 대장과 사두개인들이 그들에게 이르러서는  
그들이 백성을 가르친 것과 또 예수를 통해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선포한 것으로 인해 근심하여
그들에게 손을 대었으나 이제 날이 저물었으므로 그들을 다음 날까지 가두었더라(행4:1~3).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참으로 주목할 만한 기적이 이루어진 사실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드러났으므로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도다.
다만 그 일이 백성 가운데 더 널리 퍼지지 못하도록 우리가 그들을 엄히 위협하여 그들이 이제부터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결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니라(행4:1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이 말을 일축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옳은지 너희가 판단하라.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노라(행4:19,20).

성경은 말한다. 인간이 유토피아를 건설해보려고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디스토피아로 향하여간다. 성경이 인간에게 주려고한 유토피아는 절대 인간 다수의 손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 말하고 있다. 그들이 드린 기도의 전문은 아래와 같이 단순 몇 구절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
또 주의 종 다윗의 입을 통해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격노하며 백성이 헛된 일들을 꾀하는가?  
땅의 왕들이 일어서며 치리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도다, 하신 분이로소이다.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를 대적하며
무엇이든지 주의 손과 주의 계획이 미리 작정하사 이루고자 하신 것을 다 행하려 하였나이다.
주여, 이제 그들의 위협을 보시고 또 주의 종들이 전적으로 담대히 주의 말씀을 말하게 하시며
주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또 표적들과 이적들이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허락하옵소서(행4:24~30).

이것이 자발적 공산주의를 가능케한 원동력이었다. 원시 유토피아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즉각적이었다.

그들이 기도하기를 마치매 그들이 함께 모인 곳이 흔들리더니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니라.
믿은 자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아무도 자기가 소유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매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하니라.
그들 가운데 부족한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 이는 땅이나 집을 소유한 자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판 것들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더라.
사도들이 키프로스 지방 출신의 요세라 하는 레위 사람에게 바나바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그것을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라.)  
그가 땅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1~37).

얼마전 미국 허리케인 헐린이 플로리다주를 강타했을때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엄청났었다. 이때 연방군의 개입도 FEMA의 지원도 없자, 일부 미국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서  이재민들을 돕고자 자신의 땅을 쾌척하며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평생 또는 원하는 시간동안 이주해와서 함께 살아도 좋다는 개인 유투브방송을 본적있다. 이 사례또한 필자는 사도행전 4장에로의 회귀라고 믿고 싶다.

인간이 희구하는 유토피아는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께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목소리 높여 드리는 기도가 있을때 반드시 재현될 것이라 믿는다.


유투브동영상보기 :

https://youtu.be/8t63xPiJa7M?si=WmYQ1BMKWMNzO5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