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굉장히 중요하고 거듭 중요한 말이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이 세상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누추한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
The next day John seeth Jesus coming unto him, and saith,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요한이 다른 곳에서도 재차 말했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And ye know that he was manifested to take away our sins; and in him is no sin.
예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때도 당신이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그때에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 하시매 (마9:6).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죄를 용서해주는 권세는 결국 죄인의 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발현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순교하시기 전까지는 십자가 개념도 보혈의 개념도 피흘림의 개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께로부터 직접 죄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죄인의 죄를 제거해주시는 분으로 알고 믿고 증거했다. 예수께서 죄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로 갔다라는 설정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라기 보다는 현대인이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개념(번역)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구지 그런 설정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나님 어린양께서 세상 죄를 제거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시면 않되는 것인가?
죄용서란 바로 죄가 제거되기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미루어볼때 죄 용서의 개념 속에는 항상 죄를 제거해주는 물밑 작업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끝없이 돌아다니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이렇게 짊어지고 있으니 내게로 나와서 죄용서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대신, 죄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이제 또한 도끼가 나무들의 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느니라(마3:8,10).
먼저 자신의 죄를 쳐다보고 통절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예수께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이러하다.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마9:13).
죄인들을 부르실때 그 음성을 듣고 나오는 사람은 복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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