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능력을 상실해버린 인간
이 말은 대다수의 인류에게 적용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2023년 현재 뉴욕, 캘리포니아, 시카고, 시애틀 등 미국 대도시를 필두로 캐나다 뱅쿠버, 사우스 아프리카 아니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이후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유투버에 매일 그들의 고단한 삶이 소개되고 있다. 대한민국, 일본, 홍콩,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본래 인류는 산업혁명을 거쳐오면서 단순작업의 무한 반복으로 인간 고유의 생존능력을 상실해버렸다. 물론 고학력자나 전문가 집단도 한 때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며 미래를 꿈꾸는 때가 있었다. 핵가족 이후 가정의 붕괴와 인간 상호 신뢰가 무너진 이후,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해 오던 것이, IMF사태와 팬데믹 이후 그 고립의 상태란 인간의 존엄성마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버렸다.
인간이 최소한 협업을 통해 의식주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시대에는 전쟁의 패해나 극심한 자연재해와 같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노숙자가 되어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다. 그러나 급격한 사회변혁이 오직 돈이 있을 때만 개인이나 국가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부조리함 때문인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가혹하다. 월세, 교통비, 통신비, 주부식비, 공과금, 주유비, 교육비... 돈이 줄줄이 들어간다. 돈이 있어야지만 사람 구실하며 사람답게 살수 있는 맘몬의 세상이 되었다.
두갈래 길중 가보지 않은 길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어떤 서기관이 주님께 "선생님, 선생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내가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때 그에게 "여우들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자기 머리 둘 곳조차 없노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8:19,20).
주님께서도 한 곳에 머리를 계속 머물러 두실 수 없으셨던 것을 미루어, 때로는 산이나 들에서 숙영을 취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무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무병장수'나 '입신양명'을 선듯 약속해주고 있지 않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디모데전서6:8) 는 자세가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대부분 제자들의 삶이었으리라.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다(롬14:17)라고 바울은 말했다. 인간이 '먹고 마시는 수준의 삶'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의 단계로 업(up)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불신자 간에 매일의 삶은 '먹고 마시는(물론 생명유지에 중요한 일) 일'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를 따르는 삶이란, 어쩌면 현재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삶의 길에서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독자적으로, 성령을 모시고, 기쁨으로, 어디든지..." 여기 히브리서 11장을 잠시 소개하고 글을 맺을까 한다.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되었다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독자여러분께 드려보고자 한다.
에녹, 아브라함, 이삭, 야곱,모세,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다니엘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다'고 한다(히브리서11:38)(개역개정) 아마도 모두 이 말에 대부분 동의하실 것이다. 세상은 여기 열거한 믿음의 사람들을 막아서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당현하다고 생각들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번엔,
고문 당하여 죽은 사람,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을 받은 사람, 자유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 돌과 톱으로, 때로는 칼로 살해당한 사람, 양과 염소의 가죽을 의복삼아 떠돌며 가난과 고난과 학대를 당해야 했던 사람... 이 사람들에게는 영웅담도 없다. 세상이 이들을 막아서지 못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완전히 압살해버렸다. 그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그리스도 인들이었다. 이 사람들 역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나? 하는 점이다.
동일한 본문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다시 읽어 보겠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같혔으며 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떠돌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다...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 되었으므로(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다(히11:38).
결론,
믿음의 영웅들로부터 묻 이 세상에서 궁핍과 고난을 무릎쓴 무명의 그리스도인 한 명까지 이들은 모두 믿음안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서 그 약속들을 보았고 확신하여 소중히 간직했으며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나그네들(strangers)이요 순례자(pilgrims)라고 고백했다.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냈다.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a city)를 예비해놓으셨다(히11:13~16).
우리는 알고 있다. 해 아래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사람에게 없다는 사실을, 해 아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각자 생애의 날동안 그 수고에 따른 보상은 사람과 더불어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전8:15).
그리스도인은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
오 청년아, 네 젊음을 즐거워하라. 네 마음은 네 젊은 날들을 기뻐하며 네 마음의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걸으라. 그러나 너는 알지니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네 마음에서 슬픔을 제거하고 네 육체에서 악을 버리라(전도서11:9,10).
팬데믹 이후 맘몬으로부터 삶의 보금자리와 직장을 잃고 가정이 해체된 많은 노숙인들을 생각하며...
'잘 읽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과 고용 문제 (0) | 2023.07.01 |
---|---|
복면마왕 루시퍼 (2) | 2023.06.29 |
땅이 성폭력으로 가득 찼다 (0) | 2023.06.27 |
독수리는 과연 천사가 될 수 있는가 (0) | 2023.06.26 |
에브라임, 이스라엘, 유다 모두가 배신했나? (0) | 2023.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