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왕이다. 이 일을 위해 내가 태어났고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세상에 왔다.(요한복음18장 37절)
75억 인류가 사는 이 지구는 민족과 언어 인종에 따라 5대양 6대주에 뿔뿔이 흩어져 미승인국가를 포함하여 204개국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아 지지고 볶으며 아우성치며 살아가고 있다. 다같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 수많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식량 에너지 연료 교육 법치 복지 국가간의 경쟁 무역 주식 암호화폐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빚더미에 올라선 국채 국가나 개인간 천문학적인 빚 이와중에도 집단서방과 글로벌 사우스 간의 분쟁 종교분쟁 등 등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기독교라는 종교의 창시자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도 그럴것이 인류가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인류에게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한갖 믿음의 대상에 머무는 존재로만 인류에게 제시된 것인가? 이것이 신의 뜻이요 목적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은 어떤 연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예수님의 제자 요한 사도는 분명 보았다. 그리고 인류에게 기록으로 남겼다. 소설과 같은 거짓말로? 아님 진실로? 아마도 이 글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이지만 분명 가까운 미래의 일이다.
내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는데 흰 말 한마리가 보였다.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고 불리었다. 그분은 정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고계셨다. (중략) 하늘에 있던 군대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그들의 흰 말들을 타고 그분을 따랐다.
그분의 입에서는 예리한 검이 나와 그것으로 민족들을 치시고 또 철장(a rod of iron)으로 그들을 다스렸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고 계셨다.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었다.(요한계시록 19장 11~16절)
위 구절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예수께서 하늘에서 이 지구로 자신의 왕국을 찾으러 다시 올 때의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포함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하여 그 어느 누구에게도 통치권을 맡기지 않으셨다. 성경을 읽어보면 자세히 나온다. 현 지구에 머물고 있는 각 국의 통치자들은 최소 4년 또는 5년짜리 임시직에 봉사하는 일꾼에 불과하다.
성경은 문학작품이 아니다. 예수께서 인류에게 위대한 문학작품을 남겨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로마의 폭정과 정통 유대교로부터 종교의 암흑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온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성경을 문학작품 따위로 치부해본 적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왕이 아니시라면 누가 이 세상의 주인 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왕이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던 백성
예수께서 왕의 모습으로 이 지구에 돌아올 것이라는 암시는 4복음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그는 자신을 어떤 집주인에 비유했다.
그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거기에 즙짜는 틀을 파고 망대를 세워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나라로 떠났다고 했다(같은장 33절). 이 구절에 나오는 '포도원'과 '즙짜는 틀'을 잘 보라.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로 변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기가막힌 메타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엔 누가복음 12장으로 가보자. 그곳에는 혼인잔치에 참석하러 갔던 주인이 돌아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곳 역시 주인의 위치가 왕의 신분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두르고 너희 등불을 밝히고 있으라. 그러면 너희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으니 주인이 혼인잔치에서 돌아올 때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은 즉시 열어 주리라.(같은장 35,36절) 얼마의 기간인지는 몰라도 주인이 다시 돌아온다는 표현이 마태복음 21장에 등장하는 왕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그 장면이 제1막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함께 살펴보자. 장소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이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하였다.(요한복음 18장 38절)
보라, 내가 이 사람을 너희에게 데려왔다. 왜냐면 내가 그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하였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19장 4절)
너희가 그를 데려가서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하였다.(같은장 6절)
빌라도는 이렇게 3번씩이나 예수께 대하여 '혐의 없음'을 선고했다. 그러나 완고한 유대인들은 달랐다.
"당신이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카이사(로마 황제)의 친구가 아니요. 자신을 왕이라고 하는 자는 누구나 카이사를 대적하여 말하는 것이요"라고 말했다.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너희의 왕을 보라!(빌라도)
카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선임 제사장들)
그렇다, 암울했던 로마 식민시대 오로지 식민 백성이었던 유대민족에겐 그들의 위대한 조상들이 예언했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들의 눈과 귀는 닫혀있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들이 탄식한 그대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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