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겨우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간 느낌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설이므로 미리 독자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아들들이 태어났을 때 장자권이 제대로 큰 아들에게로 이어진 사례가 귀하다.
장자권을 빼앗긴 형은 자연 동생을 미워하고 설상가상 죽이고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런데 이같은 일은 다 하나님께서 짜놓으신 각본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일단 먼저 창세기 25장 사례를 보자.
주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두 민족이 네 태 속에 있노라. 두 종류의 백성이 네 배 속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겠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시니라(창25:23)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삭의 아내 레베카가 나은 에서와 야곱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카인과 아벨도 같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동생 야곱은 12아들을 놓으면서 그중 11번째 아들 요셉을 얻게된다. 이도 또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된다는 프레임에 놓고 보면, 분명한 사실로 다가온다.
요셉이 나은 두 아들 므나세와 에브라임 경우도 그 축복이 동생에게 주어졌다.
신약시대로 오면서 이와 유사한 사례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도 나타난다. 그 참조구절은 바로 아래와 같다.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작은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기를,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몫을 주소서, 하니 아버지가 자기 살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매
그 뒤 며칠이 안 되어 작은아들이 전부 모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더니(눅15:11~13).
첫째 아들 입장에서 보면 동생의 처사가 철없고 부당하게 보여졌다. 그래서 자신은 아버지의 가산을 지키며 아버지를 도운 것이다. 그러나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형은 대실망했다. 결국 아버지의 사랑은 오히려 동생이 다 차지한 샘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내리사랑이라고 부르는 아버지 또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왕왕 형과 동생이 서로 뒤바뀐 것을 보노라면 이게 뭐지? 라며, 항상 의문이 들곤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된다는 화두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결국 발견하게 되었다. 그 위대한 반전, 지금 여러분께 소개한다.
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20:26)
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막10:43)
강자가 약자를 섬기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규율이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예를 들어 본다. 가정에 있는 어린 아이는 약자다. 해서 누구든지 그 부모는 아이를 섬겨준다. 아이가 여럿 있을 경우 부모의 관심과 신경은 맞이보다 젖먹이 막내에게 최대로 집중된다. 더 약한 자녀에게로 향한 부모의 이런 태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부모가 아이보다 약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약한 존재인 자녀이기에 기꺼이 낮아지고 손발이 으스러지도록 그들을 공양한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이와 관련된 적절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그런즉 우리 강한 자들은 마땅히 약한 자들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하리라(롬15:1)
형제들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하노니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위로하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하라(살전5:14).
이것이다. 강한자 큰자가 약한자 작은자를 섬겨야 한다는 역설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신 교뮥모델이다. 즉 자신 밖에 모르며 약한자를 억압하고 멸시하는 본성을 가진 인간을 각성시키고 성장시키기위한 하나님의 교육법이었던 것이다.
이상이 창세기 25장 23절을 묵상하며 발견한 내용이다.
이처럼 큰 자가 작은 자를 아끼고 섬기는 세상이 오면 그 땐 이 지구가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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