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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준비한 향연인가?

by 마르코 권 2024. 8. 10.

계시록 21장은 곰곰 생각해볼 것이 많다. 그동안 보셨다시피 150일간의 악몽, 인류의 1/3이 저세상으로 갔으며, 뉴밀레니엄의 시작과 더불어 그 황혼무렵에 발발한 곡과 마곡의 최후 대전 그리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 등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인류 역사 가운데 이같은 어마무시한 일들은 두번다시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계시록을 읽으며 이런 질문이 저절로 생겨났다.

뭐지? 무엇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런 생 지옥같은 일들이 벌어진걸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계시록 21장을 읽고서야 겨우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2구절을 소개한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다.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왔다(계21:1,2)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득 담은 일곱 병을 가졌던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내게 와서 나와 이야기하며 이르되, 이리로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여 주리라, 하고
영 안에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에 이르러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저 큰 도시 곧 거룩한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계21:9,10)

성경은 은유와 비유가 차고 넘친다. 어린양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 이것이 지칭하고 있는 것은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라고 했고 아브라함은 이를 본향으로 바라보았다고 했다.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히11:10).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느니라(히11:13,14).

21장 초두에 계속해서 건축물과 관련된 메세지가 계속 등장한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계21:3).

이 구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성막은 다음과 같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히9:11)

결국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뭇 사람들의 성막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막이란?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였다.

첫번째 주제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준비해놓고 계셨는데 드디어 그것의 베일이 벗겨지고 우리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들이 그토록 본향이라고 부르던 그 참모습의 실체를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보여만 주신것이 아니라 그곳에 실제로 입주하여 살게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국어시간 시조를 배우면서 중얼거렸던 구절 하나가 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그런데 성경은 이 반대다. 인걸은 여전하고 주변환경이 180도 바뀌어져있다.

왕좌에 앉으신 분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이 말들은 참되고 신실하니 기록하라, 하시며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계21:5,6)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다(계21:1)

새로운 땅과 하늘이지만 그곳에 서있는 인간은 과거의 일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계21:4).

눈물, 슬픔, 부르짖음, 아픔 현재의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그분이 장막이 되시어 우리들과 함께 살고 질때에  이 말씀이 비로소 깨달아 질것이다.

두번째 주제의 요지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막이 되어주시는 그곳에는 천사들과 12지파 족장과 12사도들도 함께 있다. 태양과 달도 필요치 않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누구를 위해서 일까?

세번째 주제이다. 어린양의 신부를 위한 향연에 결코 무임승차로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명단을 먼저 공표하기로 하자. 이 사람들은 큰 백보좌 심판에서 이미 걸러진 사람들인데 그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다.

.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들
.  믿지 않는 자들
.  가증한 자들
.  살인자들
.  음행을 일삼는 자들
.  마법사들과
.  우상 숭배자들
.  모든 거짓말쟁이들

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게되는데 성경은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부른다(계21:8).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7)


네번째 결론에 해당하는 주제이다. 그것은 아직 종말시계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지 않았으니,  구원에로의 초청이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니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계21:6,7)

위 구절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학식의 유무, 빈부귀천, 건강 유무, 나이 성별, 인종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 육체를 가진 사람인 이상 육상경기로 치면 다같이 출발선상에 있는 것이다. 다같이 주리고 목마른 상태이다.  목표 지점은 생명의 샘까지다. 그곳에 생명책도 있고 성막도 있고 새 예루살렘도 다 있다. 덤으로 하나님의 아들도 될 수 있다.

완주 코스트랙은 모두 몇 키로나 될까? 그것은 숨질때까지다. 평생이 걸리는 문제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은 요나서 마지막 장에서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때에 주께서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수고하지도 아니하고 자라게 하지도 아니한 박,  곧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그 박을 불쌍히 여겼거든  
오른손과 왼손을 분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 넘고 또 많은 가축이 있는 저 큰 도시 니느웨를 내가 아껴야 하지 아니하겠느냐?(욘4:10,11)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속어가 있듯, 필자 역시 주리고 목마른 자였다. 때문에 이렇게 미친듯이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를 따라가고자 애쓰고 있다.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 새하늘과 새땅에서 펼쳐질 향연은 바로 여러분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독자 여러분의 권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