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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를 기다리며 남아있는 성경 예언들

by 마르코 권 2024. 7. 16.

예수 초림이후 2천 수십년이 지났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하루 단위가 천년으로 바뀌는 샘법이다. 구약 어느 곳에는 하루가 일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벧후3:8)

그것들을 채우거든 다시 네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사십 일 동안 유다의 집의 불법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각 날을 일 년으로 정하였느니라. (겔4:6)

필자는 이곳에 순서와는 상관 없이 굵직한 사건들을 모아 독자여러분께 제공해드리고자 한다.

// 예수의 재림 //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2:28)

이틀 뒤에 그분께서 우리를 되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살리로다. (호6:2)

After two days will he revive us: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in his sight.

베드로의 계산법대로 하면 이틀은 2천년, 셋째날은 2천년 끝, 3천년시작의 날을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살고있는 2024년 현재가 어디 즘인지 독자여러분은 가늠하고도 남을 것이다.

중동 이스라엘 국가는 이틀이 지나는 끝물에서야 비로소 잃었던 자신들의 고토 유대로 돌아간다는 말씀. 현재 시온주의 정부가 1948년에 세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불러모으신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전11:26)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성만찬과 관계있으며 그 행위는 그리스도의 재림 순간까지 계속 지속돼야 함을 강조한다. 만약 재림이 없다면 이런 말을 고린도 사람들에게 구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 휴거와 재림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살후2:1)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바울이 아테네에서 써보낸 편지글 가운데 나오는 대목이다. 사도였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조우한 후, 신비한 체험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초기 원시 기독교 형성당시 기독교와 관련한 계시와 미래의 독특한 사건(휴거, 재림 등)에 대해서도 심오한 교리 수립에 기여한 바 크다.


// 재림과 심판 //

아담으로부터 일곱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관해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1:14,15)

이 글은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기록했다. 에녹서라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책에서 유다가 인용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초인류시대 인물이었던 에녹의 예언은 범상하지 않은것은 분명하다. 밑줄친 구절에 나오는 주(LORD)는 그 시대로 보자면 당연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이다.

이번엔 다른 장면이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수확하는 때는 세상 끝이요, 거두는 자들은 천사들이니 (마13:39)

마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천사와 추수를 배경으로 하는 모티브는 요한계시록의 그것과 같다. 가라지와 진노의 포도송이라는 객체가 다를뿐 스토리 전개는 모두 같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으신 분에게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주의 낫을 휘둘러 수확하소서. 땅의 수확물이 익어 주께서 수확하실 때가 이르렀나이다, 하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그에게도 예리한 낫이 있더라. 또 불을 다스릴 권능을 가진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을 가진 자에게 큰 외침으로 외쳐 이르되, 너의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들을 모으라. 땅의 포도들이 충분히 익었느니라, 하더라.
그 천사가 자기의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모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 속에 던지니 (계14:15~19)



// 무덤에서 다시 일으켜지다 //

또 주 예수를 일으키신 분께서, 예수를 통하여 우리도 일으키사, 너희와 함께 드러내 보이실 줄 우리가 아노라. (고후4:14)

예수께서 무덤 곧 죽음에서 일으켜지신것처럼 그를 믿는 자 역시 하나님께서 예수와 같이 무덤에서 일으켜주시겠다는 말씀. 믿는자는 그대로 될것이다.




// 그리스도의 심판석 //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고후5:10)

그리스도의 심판석큰 백보좌심판은 같은 것이 아니다.
전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조우하게될 심판이다. 여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려고 한다면 그는 첫번째 부활에 속한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바로 이런 이류 때문이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첫째 부활이니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계20:5,6)

큰 백보좌 심판은 둘째 부활과 관계있다. 두번째 부활이야말로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종착역이다. 둘째부활은 인류로 태어났다면 모두에게 주어진다. 부ㄹ하여 좋을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최악의 악몽이다. 부활한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낙원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과 저주가운데 살아야 하는 불타는 흑암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속에 미리 설계해놓은 사후 세계에 대한 그림이다.

// 두 증인(사명자)의 출현 //

그들의 출현 장소는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곳이다. 그곳은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로 불리운다. 이 두 사명자는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이 땅에 온 것인가?

또 내가 막대기 같은 갈대를 받으매 그 천사가 서서 이르기를,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말라.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셨은즉 그들이 그 거룩한 도시를 마흔두 달 동안 발로 짓밟으리라. (계11:1,2)

중동 이스라엘이 역사에 마지막으로 3년 6개월(1,260일) 동안 무정부 상태나 다국적 군의 통제하에 들어가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남은 육체의 이스라엘 구원(하나님의 성전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위해 모세와 엘리야 같은 두 사명자를 보내신다.

두 사명자의 할 일은 1,260일동안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남은 백성 이스라엘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명은 마지막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순교의 재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계11:12,13을 보라.


그들이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이리로 올라오라, 하고 말씀하시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
바로 그 시각에 큰 지진이 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그 지진으로 사람들 중의 칠천 명이 죽었더라. 그 남은 자들이 놀라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